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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너도 바람꽃

산행·트레킹

by 바 람 2023. 3. 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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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전철을 타고  운길산으로 간다

춘의역에서 7호선 전철을 타면 상봉역까지 1시간 10분 정도 상봉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고 

30여분이면  운길산역이다.  8시가 조금 넘었다

세정사까지는 4km 남짓한 거리로 걷는 데는 이력이 나있으니 걸어가도 괜찮은 거리지만 세정사계곡에서 바람꽃들과의 

느긋한 만남을 위해서는 세정사까지  택시를 이용하는 게 유리할 것 같다

 

이른 아침시간인데도 열 분도 넘는 꽃 꾼들이 벌써  계곡을 훑고 있다. 대단한 열성들이다

가까운 수리산에는 변산바람꽃이 이미 절정이라는데  이곳 세정사 계곡의 너도바람꽃은 꿈쩍도 안 하고 있다

계곡 위쪽 예봉산에서 내려오는 가로지르는 임도 위쪽으로  올라가서야 드문드문 어린 꽃들을

볼 수가 있다  3월 하순이나 4월초쯤에는 복수초, 앉은부채, 중의무릇,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등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인데

겨우 오늘은 갓 피어나는 너도바람꽃  몇 송이 밖에  못 보고 고개사거리쪽으로 향한다

며칠  더 기다릴 것을 공연히  급하게 서둘렀나 보다 

 

 

 

 

 

 

 

 

 

 

 

 

 

 

 

 

 

 

 

 

꿩의바람꽃

 

 

세정사(世淨寺)

 

 

햇살이 따뜻한 양지쪽 나무에는 벌써 새순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데

삼월의 세정사옆 계곡에는 아직 겨우내 얼은붙은 얼음이  녹을 줄을 모른다

 

 

 

 

 

 

 

 

 

 

 

 

 

 

 

 

 

나이 탓인지 올 때마다 전에 왔을 때 보다 산도 더 높아진 듯 느껴지고

전에 없던 바위를 누가 여기다  굴려다 놓은 것 아닌가 싶다

 

 

 

 

강우레이더가

쉽게 예봉산을  식별할 수 있게 한다

 

 

 

 

 

 

 

 

 

 

 

 

 

 

 

 

 

 

 

 

 

 

고래산

 

 

 

 

 

 

 

 

 

 

절상봉에서 보는 운길산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수종사에 올라 이풍광을 바라보며 "동방의 절 중에

이만한 절경이 없도다"라고 극찬했다는 수종사에서의 멋진 뷰가 오늘은 "미세먼지 나쁨"으로 빛을

잃은 듯하다

여기에 서거정의  "閑中"이라는 시 한 수를 옮겨 적어본다.   

                                     

白髮紅塵閱世間         홍진에 묻혀 백발이 되도록 살아왔는데  
世間何樂得如閑         세상살이 가운데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만 같으리 
閑淫閑酌仍閑步         한가로이 읊조리고 한가로이 술 마시며 한가로이 거닌다    
閑坐閑眠閑愛山         한가로이 앉아 쉬고 한가로이 잠들며  한가로이 산을 즐기네

 

 

 

 

 

 

 

운길산역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능내 폐역 부근에 다산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與猶堂) 있다 

다산(茶山)이 아마도 소년시절에는 운길산이나 예봉산과 이곳 수종사에  많이도 올랐으리라.

18년간의 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로도 7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날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다성(茶聖) 초의선사(艸衣禪師)와 추사 김정희는 신분의 차이는 있었지만 동년배였고 정약용과는

20여 년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이들은 벗 같은 사제간의 각별한 친교가 있었다고 한다 

초의선사는 해남 대흥사 주지스님으로 있으면서 어쩌다 한양으로 올라와서 추사 김정희도 만나보고

이곳에 들려 수종사에  며칠씩 머물면서 다산 정약용과  어울려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며

곡차(穀茶)로 취흥을 돋우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초의선사(艸衣禪師)의 아름다운 시 한수를  옮긴다.

                                                         

 離來回首夕陽天           그대를 보내고 고개 돌려 석양 하늘을 보니

 思入朦朦烟雨邊           마음은 안개비에 아득히 젖네

 煙雨今朝春倂去           오늘 아침은 안개비 따라 봄마저 가고

 梢然空對落花眠           빈가지 쓸쓸히 혼자 떨어지는 꽃잎 보며 잠이 든다.

 

 

 

수종사 해탈문

 

 

 

 

 

수종사 아래  송촌(松村) 2리에 남아 있는 한음 이덕형의 옛 별서터(別墅址)이다

 

수종사 은행나무 근처에 있던 "이덕형별서터"를 가리키던 이정표도 온데간데없고 

(찾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인지)  이곳 송촌 2리로 내려오는 길은 무너지고 두텁게 낙엽이 쌓여  흔적도 찾기 어렵다  

길을 찾을 수 없어서  수종사에서 송촌리까지 직선으로 뻗어있는 송전케이블만  따라서 내려왔다  

 

한음이 대아당(大雅堂)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별서는 자취도 없고 정자와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에 

하마석으로 사용했다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전부이다

전에 왔을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는 누추하고 쓸쓸한 모습이다 

변한 게 있다면  은행나무 아래 놓여있는 말을 탈 때 발을 딛던 하마석(下馬石) 옆에 실물 크기의 

말이 만들어져 있는 것뿐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는" 장소이니만큼  잘 다듬어서 좀 더 오래 보전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오성이 한음보다 다섯 살이나 위였지만  늘 함께 붙어 다니면서  장난이 심했고 둘 다 재치와 기지가 

뛰어났다고 한다

 

한음 이덕형은 1580년(선조 13년)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  대사간 대제학 우의정을 거쳐 벼슬이

42세에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유별난 죽마고우 오성 이항복도 이덕형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도승지 형조판서 이조, 병조판서 대제학 우의정에 올라 

함께 임진란의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피폐해진 민심을 회복시키며  선조와 광해조의 어지러운 붕당의 국면을

공정하게 조정함으로써  조정과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두 분은 어릴 때부터의 우정도 변치 않고  돈독하게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음은 45세 때인 1605년 산수가 빼어나고 한적한 이곳 송촌리 사제촌에 관직을 은퇴한 후 부친을 봉양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농토가 딸린 별서(別墅)를 짓고 당호를 대아당(大雅堂)이라고 지었다

대야당 앞에 오성 이항복과의  재회를 생각하며  읍수정(挹秀亭)과 "벼슬에서 물러나 만년을 즐긴다"는 의미의

이로정(怡老亭)이라는 두 개의 정자를 짓고  손수 마주 바라보게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소싯적의 죽마고우였으며 오랜 세월 동안 절친이었던 오성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마음에서였으리라

 

그 후 한음은 1613년(광해 5년) 영창대군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가 탄핵을 받아 지금의 송촌리로 낙향한 후

실의에 빠져 근심하다가 병을 얻어 1613년 10월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한음이 세상을 떠난 5년 후 오성(鰲城)도 인목대비 폐위론을 반대하다 관직이 삭탈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1618년 7월 그곳에서 친구를 따라 세상을 등졌다

 

 

지금은 대아당(大雅堂) 건물은  없어지고 이곳이 한음의 별서 터(址)였음을 알리는 돌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정자 이로정(怡老亭)도 없어지고  2012년 11월에 다시 복원하였다는 읍수정(挹秀亭)만 쓸쓸히 홀로 남아있다

그리고 온통 시멘트로 아랫부분이 발라져 보기는 흉하게 되었지만 한음이 심었다는 두 그루가 은행나무가

거목(巨木)이 되어  서로 마주 보며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605년에 심은 나무라고 하니 지금  나무의  나이가 418살인 셈이다

 

 

 

 

 

산행코스: 운길산역 - 세정사계곡 - 고개사거리 - 490봉 - 503봉 - 운길산 - 절상봉 - 수종사 - 이덕형별서 터 - 운길산역

산행시간 :  6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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