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관곡지(官谷池)

산행·트레킹

by 바 람 2022. 7. 26. 11:58

본문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정자 아래 연(蓮)이 심겨있는 이  작은 연못이 관곡지(官谷池)이다

강희맹(姜希孟)이 세조9년(1463년)에 진헌부사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경에서  꽃이 희고 뾰족한 꽃잎 끝이

담홍색인 아름다운 전당홍(錢塘紅) 연(蓮) 씨앗을 가져와서 넷째 사위인 권만형(權曼衡) 소유의 이 연못에 심었다

 

그후 1844년(현종10년)  권만형의 후손인 권용정(權用正)이 안산군수로 부임하여  6명의 연지기를 두어 다른 부역을

면제 해 주고 연(蓮)의 관리에만 전념토록 함으로서 전당홍이 널리 퍼지게되었다고 한다

이 관곡지는 시흥시 향토유적 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금도 권만형의 후손인 안동권씨 화천군파의 종중소유 사유지이다

이태 전엔가 왔을 때는 안으로 들어가서 관곡지며 정자와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정문이나 정자있는 곳의 작은

쪽문에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강희맹(1424~1483)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문장가였고 농학자였으며 자는 사숙재(私淑齋)이다

영의정 심온(沈溫)의 첫째딸이 세종의 왕비가 되고 둘째 딸이 강희맹의 부친인 강석덕과 혼인함으로서 세종이 이모부가

되고 세조(수양대군)와는 이종사촌간이며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명망이 높았던 강희안의 아우로서  

대단한 명문가 태생이였다

세종29년에 24세로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종부시 주부로 관직을 시작하여 성종 때에는  좌찬성에 까지 이르렀다

 

문집으로 금양잡록(衿陽雜錄), 촌담해이(村談解頤),진산세고(晉山世稿)등이 있다 

관곡지에서 멀지않은 건너편 월대봉 자락에 강희맹과  진주 강씨 문량공파 후손들의 사당과 묘역이  있다

 

 

 

강희맹이  말년에 썼다는  시 한 수를 옮겨 본다

 

南窓終日莁忘機           남쪽 창에 해가 다하도록 속세의 일 잊고 앉았으니

庭院無人鳥學飛           인적 없는 뜰의 정원에서는 새가 나는 것을 배우네

細草暗香難覓處           가는 풀 그윽한 향기 머무는 곳을  찾기 어려운데

澹煙殘照雨霏霏           저녁노을 엷은 안개 속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네

 

 

 

 

 

 

 

 

 

'산행·트레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악산(白岳山)  (0) 2022.09.04
곰배령  (0) 2022.09.01
대청도(大靑島)  (0) 2022.06.16
덕적도비조봉(飛鳥峰)  (0) 2022.06.06
비수구미(秘水九美) 길  (0) 2022.05.19

관련글 더보기